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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아웃 4]닉X퀴리 드림썰 - 꿈 - 자작소설

"무슈 네이트, 개꿈이란건 뭔가요?"

그녀의 물음이 들려오는 곳은 황폐해진 커먼웰스에서 콩코드 외곽에 위치한 생츄어리 힐스에 세워진
작은 정착지였다. 훗날 '볼트 111의 마지막 생존자'라고 불리우는 네이트란 남성이 북동쪽에 위치한
'핀치 농장(Finch Farm)'에 들렀다가 막 복귀한 참이라 방탄용으로 착용하고있던 파워 아머의 헬멧을 막 벗어넘긴 때
차고를 개조한 정비실에 그녀가 찾아와 대뜸 묻고있는 상황이었다.

"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네요 퀴리."

퀴리라고 불리우는 이 여인은 체크무늬 셔츠에 낡은 청바지를 입은 겉으로 보기엔 약간 순박해보이는 여인으로 보이지만
그 속내는 인스티튜트에서 제작한 인간을 모사한 안드로이드이다. 본래 그녀는 볼트 81에서 근무하던
미스터 핸디의 어성형 모델, 미스 내니 중 하나였지만. 로봇의 몸으로는 연구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간의 몸을 원하였다가 모종의 이유로 식물인간이 된 신스의 몸체에 이식되어
모방하였지만 거의 근접한 인간의 육신을 얻게 되었고, 지금은 미스 내니였던 시절과 다른 인체의 감각이 익숙치않던 시기였다.

"오늘 아침에 물건들을 옮기다가 핸콕에게서 개꿈을 꿨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그 개꿈이란게 뭔지 알려달라고
물어보니 짜증내면서 네이트에게 물어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돌아오신 김에 여쭈어보는 거에요."

네이트는 선한 인물이다. 그녀의 순진한 질문에 별 다른 불만이나 비아냥없이 상냥하게 이야기해 줄 인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지금 매우 피곤한 상태였다. 보조장치가 달려있다고는 하지만 파츠 당 수십 킬로그렘에 달하는
파워아머를 착용한 채 다른 운송수단이나 교통수단도 이용하지 못하고 짐 보따리를 한가득 등에 메고서
이제 막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정착지에 도착해 겨우겨우 온 몸을 짓누르던 파워아머 파츠 한 덩이를 벗은 참이었다.
그녀의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 것임을 지레 짐작한 네이트는 작게 한 숨을 쉬고서 그녀의 물음에 답하였다.

"허음. 퀴리, 최근에 신스로 교체된 뒤로 밤이 될 때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본 적 있나요?"

"네. 그런 행위를 '잠을 자다'라고 하죠? 잠을 자는게 인간의 연료충전 방식이라고 들어서 시도는 해봤어요.
신스 바디로는 재충전되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뭐랄까. 기분은 나아지는 것 같았어요.
밤 부터 아침까지 눈만 감고 지내기엔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요."

"그래요. 잠자는건 알고 계시는군요. 어..음, 사람은 잠을 자면 렘 수면이랑 논-렘 수면을 반복하는데
얕은 잠을 의미하는 렘 수면일 때 꿈이란걸 꾸거든요. 그 때 여지껏 경험했던 것들과 느꼈던 것들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환상처럼 보여주는게 있어요. 아마도 어제 밤에 핸콕이 꾼 꿈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나봐요.
그래서 꿈을 꿨는데 개꿈이 된 거죠. 별로 안좋은 거 말할 때는 어두에 '개'자를 붙이잖아요?"

"그럼 저도 꿈을 꿀 수 있을까요? 있다면 어떻게 꿀 수 있는건가요?"

"오, 이런..."

네이트는 쉬고 싶었다. 몸만 자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건네진 질문에 최대한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주고 싶었건만
막상 때가 닥쳐오니 견딜 수 없을만큼 진절머리가 났다. 그의 입에서 무심코 탄식이 새어나왔다.
퀴리, 그녀는 눈치없는 로봇이 아니었다. 네이트의 드러난 얼굴 피부에 피어오른 여드름과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만 봐도 그가 더 이상 이야기를 더 이어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 네이트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말하였다.

"아, 미안해요. 제가 피곤한 분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요."

"아, 아니에요 퀴리. 괜찮아요. 아니, 괜찮지는 않지만. 흐음..."

네이트는 방금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고개숙여 반성하였지만 그렇다고 굳이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진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 상황을 해결하는 동시에 그녀의 궁금증도 해결할 수 있는 방도가 떠올라 고개를 들어 말을 이어나갔다.

"퀴리, 저랑 같이 동행했던 닉 발렌타인이 지금 옆 건물에서 쉬고 있을거에요. 그 라면 알고있을지도 모르니 가서 물어보는게 어때요?"

팔을 들어올려 자연스레 옆 건물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는 네이트를 보며 퀴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하였다.

"알겠어요 무슈 네이트. 닉에게 물어볼테니 푹 쉬고 계세요."

말을 마친 그녀가 정비실을 빠져나가 옆 건물로 옮겨가는 사이, 네이트는 무의식적으로 강철 팔을 들어올려
자신의 미간을 닦아내다 강철 팔에 스며들어있던 녹이 묻어나와 한 순간에 짜증이 솟구쳐 인상을 찌푸렸다.


나무 판자들로 외벽을 두르고 무너진 기둥을 가로등으로 지탱하고있는 닉을 위한 작은 사무소에 퀴리가 도착하였다.
문 앞에 선 퀴리는 곧장 들어서지않고 닉이라고 적혀있는 팻말을 재차 확인하고서 얇은 철제 판자로 이루어진
사무소 문을 두 번 노크하여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들어오게."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서야 그녀는 문고리를 잡아돌려 문을 열고 그와 마주하였다. 낡고 닳은 코트와 중절모를 갖춰입은 채
외피가 썩어 문드러져 몸체 안에 설치된 회로가 그대로 드러나는 상태임에도 개의치않고 깔끔한 책상에 딸린 의자에 앉아
이제 막 담배에 불을 붙인 2.5세대, 혹은 3세대 프로토타입인 닉 발렌타인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어서오게 퀴리. 노크를 한 순간부터 자네일거라 생각했지. 이 정착지에서 그 정도로 여유있고
예의바른 사람은 자네 밖에 없으니까. 무슨 일로 온 건가? 뭔가 궁금한게 생겼나?"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워놓고서 자연스레 입에 물고 짧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니
그의 입에서 싸구려 가습기처럼 흰 연기가 약하게 뿜어져나왔다. 그녀는 그의 담배피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이내 용건을 이야기하였다.

"맞아요 무슈 닉. 꿈이란건 어떻게 꾸는건지 알고 싶어서요."

"흠.. 그거 참 심오한 질문이로군. 그래."

닉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가 이내 손가락 사이에 끼워둔 담배를 다시 입으로 옮겨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고는
끄트머리가 벌써 재로 변해 타들어가는 담배를 재털이에 털어내고서 말을 이어나갔다.

"꿈에 대한 정의는 자네가 좋아하는 의학 저널 같은 곳에서 수십, 수백 번 이야기할테니 여기서 설명하진 않겠네만.
우리같은 신스들은 조금 다르게 꿈을 꾼다네. 내가 그 방법을 알려주지.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꿈을 꾸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네. 원한다면 눈을 감는 즉시 가능하지.
단, 침대처럼 편안한 휴식 공간에 놓여있어야 제대로 활성화가 된다네.
그렇게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으면 자체적으로 기능을 비활성화 시킨다고 상상해보게.
자네에겐 쉬운 일은 아닐테지만 아예 모든 감각을 꺼트려버린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리고나면 자네는 홀로 영화관에 들어서게 될 거야. 손에 든 티켓은 수많은 빈 좌석들 중에 한 가운데를 가리키고 있고
내가 자리에 앉으면 영사기가 틀어지지. 그 영사기에 나오는 내용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순간들이 담겨져있어.
그 중에서 자네가 기억하고 있는 한, 원하는 장면을 계속해서 감상할 수 있다네.
그렇게 감상하다보면 어느센가 시간이 흐르는데 그 때는 다시 온 몸의 감각을 되살린다는 느낌으로 상상하면
다시 눈을 뜨고 일어설 수 있는걸세.

도움이 되었나? 퀴리."

설명을 마친 그가 슬쩍 시선을 내려 담배를 살피니 겨우 두 번 물었던 담배가 벌써 절반 가량 타들어가 있었다.
그 끄트머리에 달려있는 길쭉한 잿더미가 떨어질랑말랑 매달려있을 때. 닉은 그대로 담배를 수직으로 세워
재떨이에 꽂아 이리저리 비벼 꺼트리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해요 닉. 이렇게 상세한 설명을 듣게 될 줄은 몰랐어요. 영화라니. 깨어난 이후로 얼마만에 보는건지
기대되네요."

그녀는 들뜬 심정을 감출 수 없는 사람처럼 한껏 기대된 얼굴로 웃어보이며 그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었다.
이제 막 해가 저물기 시작한 시기이건만 그녀는 꿈을 꾸기 위한 밤이 오기를 기다릴 수 없는지 두 손을 마주잡은 채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안달이 난 상태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 엄숙하게 말을 걸어온 것은 닉 발렌타인이었다.

"자네는 나처럼 프로토타입이 아니니 좀 더 최신식 모델로 나올지도 모를 일이지.
즐길거리가 생겼다는 그 유약한 심정은 이해하네만 너무 심취하지는 말게. 과거의 일을 본다는게 마냥 좋은 게 아니니까."

닉의 말에 퀴리는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고있어요 무슈 닉. 그 옛날 볼트에서 지내던 시절 망막 센서에 기록되어있을 그 분들과의 일 말이죠?
지금도 그 분들이 그립긴 하지만 저는 이 슬픔이란 감정을 견뎌냈어요 닉. 걱정하지 마세요."

방금까지 해맑게 웃고있던 그녀의 얼굴에 결의에 찬 듯한 긴장된 표정이 드러나보였다.
이를 보던 닉은 아주 잠시 그녀를 응시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서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어느 덧 모두가 잠들어있을 야심한 밤에 닉은 홀로 작은 사무소 안에서 다이아몬드 시티에 있는 자신의 본 사무소에서 가져온
사건 파일들을 정리하며 2~3일 전에 들어온 의뢰들을 추리하고 있었다. 머릿 속으로 온갖 상황과 심리를 계산하고서
생각을 마치는 순간, 급작스럽게 밀려오는 데이터가 과부하를 일으켜 지끈거리는 두통을 안겨주는 듯 하였다.
이런 쓸데없는 고증에 익숙한 닉은 두통을 해결하기 위해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사무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어두운 길가에 가로등 불빛이 몇 번 깜빡이고 울타리처럼 세워진 외벽 사이사이에 칩입자를 방지하기 위한
자동 포탑형 터렛 몇 기가 붉은 레이저 센서를 번뜩이며 좌우를 살피고 있었다. 코트 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뱃갑을
꺼내들고서 얼마 안들어있는 담배 한 개피를 집어들려는 순간, 건너편 건물에 자리잡은 벤치에
누군가 앉아있는 것을 반견하였다. 닉은 손에 든 담배를 다시 담뱃갑 속에 집어넣고서 대충 그것의 정체가 짐작이 가는지
긴장하지 않은 편한 발걸음으로 건너편 벤치로 향해갔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닉을 바라보는건 오늘 저녁 그에게 '꿈'에 대해 물어봤던 퀴리, 그녀였다.
침울해보이는 울상에 몇 차례 눈물을 흘렸는지 그녀의 눈두덩은 약간 부어오른 상태였다. 그녀를 바라보던 닉은
착잡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조심스레 그녀의 옆 자리에 앉고는 시선을 마주치고서 먼저 말을 걸었다.

"그래, 무슨 꿈을 꾸었길래 그렇게 울상이 되어버린건가?"

평소 머릿 속에 피어오르는 호기심으로 물어보거나, 역으로 그녀에게 건넨 질문에 순순히 답할 때는
머뭇거리는 여지없이 곧잘 이야기하던 그녀였지만. 그녀는 난생 처음,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로인해 그녀 또한 적지않게 당혹스러웠는지 닉의 시선을 피하고서 정면을 바라본 채 헛기침을 해대며
신스 바디의 성대 모듈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확인하고나서야 그에게 답할 수 있었다.

"처음 신스 바디로 이식되었을 때 느꼈던 슬픈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흐릿한 기억과 그리움으로 머릿 속에서 상상하던 것과는 달리, 제가 직접 겪은 일이 확실한 그 때 그 시절을
생생하게 재현된 곳에서 직접 상호작용까지 할 수 있게 되니 견딜 수가 없었어요.
무슈 닉, 거긴 영화관도 영사기도 없었어요. 아직 살아있던 세 명의 박사님과 미스 내니 바디로 움직이던 제가 있었어요.
박사님은 저를 평소처럼 조수처럼 대하셨고 나머지 분들도 생기있고 아직 젊으셨어요.
그런데 그 때에는 별 다른 감흥이 없었건만 지금에와서 다시 되돌아보니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죽은
박사님들이 안타까워요. 그리고 그 때 동안 약을 만들어내지 못한게 너무나 죄송했어요."

퀴리는 다시금 말문이 막혀 고개를 숙인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꾹 참아내려고 노력했지만 오히려 굳게 닫힌
눈꺼풀이 눈물을 쥐어짜내는 것처럼 틈 사이로 눈물이 새어나와 그대로 그녀의 허벅다리 위에 얹어진 손등 위로 한 방울 떨어졌다.
그녀가 느끼고있는 감정을 닉이 모를 리 없었다. 비록 프로토타입이라 영사기에 비추어진 꿈을 감상하는 것이 고작인 자신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꿈에 나오는 이들과 상호작용 할 수 있을만큼 발달된 그녀가 느낀 감정은 상당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또한 자신이 본 꿈을 마주하고서 대수롭지않게 여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닉은 그녀와는 달리
프로토타입에겐 눈물샘과 같은 불필요하고 지저분한 파츠가 장착되어있지 않았을 뿐이었다.

"자네가 슬퍼하는 것도 이해가 가네. 나 또한 자네처럼 과거를 되돌아보고 슬펐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으니까.
자네가 느끼는 감정은 올바른 것일세. 슬퍼서 우는 것이 무엇이 나쁘겠나? 구태여 참을 필요 없다네.
그게 가장 인간다운 행동이니 말일세."

닉의 조언을 들은 퀴리는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조금은 편해진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참지 않고 그대로 내보내는 눈물들은 한 두방울 계속해서 그녀의 손등 위로 떨어지고 있었고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을 때
그녀는 팔을 들어올려 옷깃으로 눈물 범벅인 눈가를 닦아내었다. 숨을 고르며 안정을 취하는 그녀의 행동에
닉은 안심하며 자리에 일어나 그녀에게 말하였다.

"조금 진정되면 도로 들어가서 자고 일어나게. 그냥 날을 새버리면 머리에 과부하가 일어난 것처럼 지끈거릴테니 말일세."

그렇게 이야기하고서 벤치에서 일어나 담배를 태우기 위해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자
그녀가 대뜸 그의 코트 끝자리를 움켜쥐며 그를 막아섰다. 닉은 그녀의 행동에 조금 놀랐지만 차분하게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었고
퀴리는 코트를 붙잡은 손에 힘을 준 채로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본 채 말하였다.

"무슈 닉, 이대로 잠들었다간 또 다시 그런 '개꿈'을 꿀 지도 몰라요. 그러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곁에 있어주세요.
당신처럼 서로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안심하고 잠 들 수 없을 것만 같아요."

"자네, 숙녀의 침실에 사내를 들인다는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말하는건가?"

"상관없어요. 그냥.. 곁에 있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 겸 농담처럼 내뱉은 말도 그녀에겐 와닿지 않는 듯 했다. 굳이 거절한다면 거절할 수 있겠지만
그녀에게 악영향이 미치진 않을까 걱정된 닉은 할 수 없이 담배는 포기하고서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제안을 승낙하였다.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려는 닉은 다시 벤치에 앉아 그녀와 말없이 시간을 보냈고 이윽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퀴리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해가 뜨기엔 이른 새벽, 닉은 꿈을 꾸었다. 익숙한 광경의 고급스런 영화관 안에서
커다란 스크린을 바라보는 고급 시트가 깔린 좌석들 중 정중앙에 위치한 자리에 앉아 영사기에서 틀어져나오는 영상을 바라보았다.
스크린에서는 생전 닉 발렌타인이 자신의 약혼녀와 파티에 참석하여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내용이었다.
지금의 닉 발렌타인이 직접 겪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 때 당시의 감정과 기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추억으로 인한 재현이다보니 그녀를 제외한 주변인물들의 묘사는 흐릿하고 주변 경관도 세밀하진 않았지만
마주하고 있는 약혼녀의 표정과 생김새는 자세히 묘사되고 있어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닉, 지금 추고있는 저 춤은 뭔가요? 처음보는 방식이네요."

그러나 이번 꿈에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옆 자리에 퀴리가 앉고서 같은 스크린을 바라보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곧잘
옆에 앉아있는 닉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이것이 단순한 오류인지 아니면 서로간의 커넥션이 이루어진건지 알 길은 없지만
닉은 개의치않고 평소대로 그녀를 대하듯 상세히 설명하였다.

"미뉴에트라는 사교춤의 일종일세.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는데, 자네는 모르는건가?"

"무슈 닉, 제가 프랑스 억양을 사용하고 있다지만 직접 춤을 춰본 적도 없는데다 프랑스에서 제작된 게 아니랍니다."

"이런, 깜빡하고 있었군. 나중에 내가 직접 가르쳐주도록 하겠네. 꿈에서 말고 직접 말일세."

"정말인가요? 춤이라니 정말 근사할 것 같네요. 꼭 가르쳐주었으면 좋겠어요 닉."

다정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영화는 계속해서 상영되어간다. 닉과 퀴리, 둘이서 꾸는 영화관 꿈은
아침해가 떠오르고 그들을 찾는 이가 다급하게 깨우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절찬 상영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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